N년 전 오늘 On This Day

On this day in 1929, 헝가리 축구의 전설, 산도르 코츠시스가 태어났습니다!

그란데 사커 2022. 9. 21. 22:53

93년 전 오늘,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인 '황금의 머리' 코치시 샨도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1950년대를 지배했던 헝가리, 일명 '매직 마자르'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였으며 역사상 최고 수준의 헤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완벽한 공격수였습니다.

 

*사진 자가 제작


1929년 9월 21일,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코치시 샨도르 페테르(Kocsis Sándor Péter, 영어식으로 산도르 코츠시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두각을 보이며 1945년, 헝가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 중 하나인 페렌츠 바로시에 입단했습니다.

그는 1946/1947 시즌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1948/1949 시즌에는 30경기에서 33골을 터뜨리며 페렌츠바로시를 헝가리의 챔피언으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클럽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도약하던 시기인 1948년에는 루마니아를 상대로 2골을 터뜨리며 9-0 대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헝가리 국가대표팀에서의 화려한 데뷔였습니다.

2019년, 페렌츠바로시는 코치시의 90번째 생일을 맞아 클럽의 홈구장 앞에 그의 동상을 세워 구단의 전설을 기렸습니다.


1950년, 그를 포함한 페렌츠바로시의 몇몇 선수들은 헝가리의 육군 클럽인 부다페스트 혼베드로 이적하였으며 코치시는 혼베드에서의 7시즌 중 5번의 시즌에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또한 1951년, 1952년, 1954년에는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였으며 1952년과 1954년에는 유럽 최다 득점자이기도 했습니다. 혼베드에서에서의 코치시와 푸슈카시 페렌츠(Puskás Ferenc)의 파트너십은 역사상 최고의 공격 듀오 중 한명으로 회자됩니다.

클럽에서의 대단한 활약과 푸스카스와의 전설적인 파트너십은 헝가리 국가대표팀에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황금의 머리' 샨도르 코치시와 '질주하는 소령' 푸슈카시 페렌츠, '최초의 펄스나인' 히데구티 난도르의 막강한 공격진과 '인버티드 윙어' 치보르 졸탄, '중원 사령관' 보지크 요제프, '블랙 팬서' 줄러 그로시치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던 위대한 1950년대의 헝가리는 '매직 마자르(Magical Magyars)', 골든 팀(Golden Team)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1950년대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팀으로 군림했습니다.

매직 마자르 - Golden Team


매직 마자르는 1952년 헬싱키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적인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였으며, 코치시는 6득점으로 대회 득점 2위에 올랐습니다. 이듬해에는 현재 UEFA 유로의 전신 격인 1948-1953 중앙 유럽 인터내셔널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1953년에는 매직 마자르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경기인 '세기의 경기(Match of the Century)'가 펼쳐진 해였습니다. 헝가리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상대했으며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라 불리는 웸블리에서 펼쳐진 경기입니다.

웸블리에서 패배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던 삼사자 군단도 위대한 헝가리에게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경기는 6-3으로 헝가리가 승리하였으며,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잉글랜드와 전 세계의 축구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다가온 1954년 스위스 FIFA 월드컵, 헝가리는 역시나 이견 없는 우승 후보였으며 좋은 경기력으로 4경기를 치르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베른의 슈타디온 방크도르프에서 열린 서독과의 결승전, 헝가리는 전반 초반부터 압도하며 선제 2득점을 기록했지만, 내리 3실점하며 '베른의 기적'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코치시는 대회 5경기에서 두개의 해트트릭을 포함한 11득점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두번의 해트트릭은 조별리그 한국전과 서독전(4골)에서 나왔습니다. 이후 펼쳐진 브라질과의 8강전, 일명 '베른의 전투'에서도 2득점을 기록하였으며 우루과이와의 4강전에서도 연장전에서의 결정적인 두번의 헤더 득점으로 4-2 승리, 자신의 '황금의 머리'를 증명하며 헝가리의 결승행을 이끌었습니다.

헝가리의 전성기는 1956년에 일어난 헝가리 혁명으로 코치시를 포함한 팀의 핵심적인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막을 내립니다.

1950년 6월 4일부터 1956년 2월 19일까지, 매직 마자르는 42승 7무 1패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코치시는 1948년부터 1956년까지, 출전한 68경기의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75골을 넣으며 푸슈카시에 이은 헝가리 국가대표팀 득점 2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코치시와 푸슈카시. 헝가리 국적의 벤피카 레전드 감독인 구트만 벨라와 함께.


매직 마자르의 분해와 함께 코치시는 부다페스트 혼베드를 떠나 영 펠로우스 취리히,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서 선수 말년을 보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코치시의 바르셀로나는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르기도 했지만 지난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슈타디온 방크도르프에서 또다시 패배의 쓴맛을 보았습니다.

코치시의 바르셀로나 시절.


1966년에 축구화를 벗은 그는 이후 몇몇 작은 클럽들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 1979년 7월 22일, 향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백혈병, 위암과 투병하고 있었으며 바르셀로나의 한 병원 4층에서 떨어져서 사망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자살로 추정됩니다.

샨도르 코치시는 1950년대를 대표하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였습니다. 스트라이커치고는 크지 않은 키인 177cm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황금의 머리(Golden Head)'라는 별명답게 역사상 최고 수준의 헤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헤더 이외에도 공격수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헝가리 축구의 황금기와 축구의 한 세대를 빛냈으며, 그의 업적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호날두와 메시는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푸슈카시 또한 시대의 아이콘이었으며 코치시는 푸슈카시만큼의 위상은 아니었으나 당대 축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른 세대의 선수들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코치시는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명입니다."

-마로시 게르게이(헝가리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