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 전 오늘 On This Day

On this day in 195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계는 멈췄습니다: 뮌헨 항공 참사

그란데 사커 2023. 2. 6. 23:40

1958년 2월 5일, 맷 버스비(Matt Busby)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의 원정으로 떠나 유러피언컵 8강 2차전을 치렀다.

결과는 3 대 3 무승부였지만 1차전에서 승리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러피언컵 4강에 진출하였으며 경기 다음 날에는 여느 때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베오그라드에서 맨체스터로 직행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눈이 내리고 있던 독일의 뮌헨-림 공항에서 급유를 위해 멈춘다.

급유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단이 타고 있던 비행기는 이륙을 시도했으나 엔진 문제로 이륙하지 못했으며, 2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의 기장이었던 제임스 타인은 뮌헨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3번째 이륙 시도를 원했다.

그 무렵, 활주로의 끝에는 눈이 쌓여있었으며 공항 당국에서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기에 그대로 3번째 이륙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비행기는 쌓인 눈이 있던 구간으로 진입하여 급격히 속도가 줄기 시작하며 이륙이 불가한 상태가 되었고, 남아있던 활주로의 길이 또한 짧았기에 정지할 수도 없었다.

결국 비행기는 활주로를 넘어 울타리를 뚫고 집과 나무에 부딪히며 왼쪽 날개가 부서졌고, 이후 기체의 뒷부분은 더 미끄러져 연료 트럭에 있던 나무 차고와 충돌하며 비행기는 화염에 휩싸인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키퍼였던 해리 그렉(Harry Gregg)은 맷 버스비 감독과 바비 찰튼, 존 블랜치플라워, 데니스 바이올렛 등의 선수들을 포함한 수많은 승객들을 필사적으로 구하며 뮌헨의 영웅으로 불렸으나 결국 44명의 승객 중 20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1명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 2명은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23명의 사망자 중 8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다른 2명의 선수는 경기에 다시는 뛸 수 없었다.


1958년 2월 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계는 멈췄다.

선수: 제프 벤트(Geoff Bent), 로저 번(Roger Byrne), 에디 콜먼(Eddie Colman), 던컨 에드워즈(Duncan Edwards) , 마크 존스(Mark Jones), 데이비드 페그(David Pegg), 토미 테일러(Tommy Taylor), 빌리 웰란(Billy Whelan)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직원: 월터 크리머(Walter Crickmer), 톰 커리(Tom Curry), 버트 월리(Bert Whalley) / 언론인: 프랭크 스위프트(Frank Swift), 도니 데이비스(Donny Davies) / 승무원: 케네스 레이먼트(Kenneth Rayment)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1958년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풋볼 리그 3회 연속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었던 잉글랜드 최고의 팀이었다.

맷 버스비 감독의 지휘 아래 육성된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은 '버스비 아이들(Busby Babes)'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클럽의 무수한 영광을 이끌 것만 같았다.

1956/57 시즌에는 유럽 대항전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던 풋볼 리그 사이에서 잉글랜드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 출전한다.

첫 출전한 유러피언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4강에 진출하였고 1957/58 시즌에서도 승승장구하며 4강에 오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대회의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버스비 아이들'의 마지막 경기


그러던 와중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하며 당장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는 단 2명뿐이었으며, 맷 버스비 감독도 큰 부상을 입어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입원을 해야만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즌은 그대로 마무리될 것 같아 보였으나 지미 머피(Jimmy Murphy) 부감독을 필두로 여러 선수들을 영입하고 클럽의 기존 후보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적극 기용하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벌인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5명의 선수를 임대해 줄 것을 제안하였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은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친선경기를 주관하였고 팀의 스타였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임대를 제안하기도 하였으나 FA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또한 1957/58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한 레알 마드리드는 해당 대회의 우승 자격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선뜻 내주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를 거절하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넘어선 세계적인 노력의 결과로, 클럽은 시즌의 남은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며 비록 남은 리그 14경기에서 1승 만을 거두었지만 FA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희망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후에도 계속된 숱한 재건을 위한 노력으로 클럽은 1963년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63/64 시즌에는 유망주였던 조지 베스트를 영입하며 바비 찰튼(Bobby Charlton), 데니스 로(Denis Law), 조지 베스트(George Best)유나이티드 트리티니(United Trinity)가 결성된다. 해당 시즌에서 데니스 로는 46득점을 기록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하였으며, 1964/65 시즌과 1966/67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명가의 부활을 알렸다.

그리고 1967/68 시즌, 참사 발생 10년여 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연장전 끝에 벤피카를 꺾고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하며 하늘에 있는 팀 동료들에게 빅 이어를 선사한다.

1968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또한 해당 대회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배했던 레알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은 우승에 대한 축하를 하며 두 클럽의 여전한 우정을 보여주었다.

"다른 클럽이 우승해야 한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승을 바랐기에 기쁘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레알 마드리드 회장)-

비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 챔피언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핵심 선수들의 노쇠화 문제로 부진하며 긴 암흑기를 마주하였다.

그러나 알렉스 퍼거슨이 클럽에 부임한 후, 20년의 긴 시간 동안 세계 최정상급 팀으로 군림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맞으며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한 클럽이 되었다.

알렉스 퍼거슨 경(Sir Alex Feguson)과 맷 버스비 경(Sir Matt Busby)

"저는 그저 맷 버스비 경이 일구어 낸 토대를 지키면 됩니다. 그의 뒤를 잇게 되어 영광입니다."

-알렉스 퍼거슨-